(출처: 한국일보)
지난 3월은 프로젝트가 걸려 한달동안 업무량이 폭주하는 바람에 블로깅도 독서도 거의 하지 못했다. 늦은 저녁까지 자료와 씨름하고 컨퍼런스콜이 수시로 잡히고 주말까지 회의하는 일이 많았다. 눈 깜박하는 사이에 2월에서 4월로 올해 달력이 건너뛴 느낌이다.
다른 한편으로, 3월은 대한민국에게도 많은 걸 잃어버린 시간이었다; 2월말에 박근혜정부가 미래창조과학부 장관 후보로 김종훈씨를 천거했다가 3월초에 김종훈씨 스스로 사퇴를 하는 해프닝이 있었다. 3월 내내 그 자리는 여전히 공석이었고 미래창조경제라는 주제 역시 휑하니 비어 있었다. 지난 몇주동안은 대선 공약이었던 이 주제가 그 정체에 대한 공격을 받고 있다. 알맹이없는 공약이라는 얘기들이다. 그러던 차에 급기야 김종훈씨가 워싱턴포스트에 그가 겪었던 심적 고충을 토로하는 글을 기고했고, 많은 사람들이 그의 언사에 실망을 했다. 최근에는 박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관료들을 상대로 창조경제에 대해 설파한다는 기사도 나오고, 차츰 각론에서 창조경제가 무엇인가에 대해 논의도 있다. 그러나 수렴되는 여론은 창조경제의 실체가 아직 없다는 점이다. 관료들도 기존 사업안에 창조라는 단어를 붙여서 보고해야 예산이 나온다는 말까지 있다. 들리는 바로는 윤종록 제2 차관이 바로 창조경제의 주창자란다. 하지만 그 내용 역시 IT분야의 융합기술과 창업시스템에 촛점이 맞춰져 있지 경제전반을 감싸안는 시각은 찾아보기 힘들다. 또한 창조경제론에 비판적인 시각들은 문화적인 측면에도 있다. 창조경제의 필요조건으로는 관료적인 정부문화부터 바꿔야 한다고도 한다. 그 역시 창조경제의 전체성을 설명하기엔 역부족이다. 이런 방향없는 논의의 모습을 보며 한국에서 건설적인 경제관에 대한 토의가 얼마나 부족한지 새삼 절감한다.
결론을 먼저 말하자면 나는 박근혜정부의 창조경제론에 회의적이다. 그 당위성에는 동감하지만 박근혜정부나 현재 대한민국의 지도층이 역량이 없다고 보기 때문이다. ICT산업이건 융합이건 컨버전스건 신에너지이건 뭐가 됐건간에 대한민국 자본주의에 대한 깊은 성찰이 없기 때문에 이명박씨의 녹색성장산업처럼 5년동안 말만 하다가 끝날 게 뻔하다. 문제의 핵심에는 창조경제라는 어마어마하게 큰 주제를 마치 KTX신사업 하나 하듯이 처다보는 데 있다. 역설적이게도 정부주도 경제계획이라는 낡은 사고에서 새로운 경제패러다임을 만들겠다는 것이기 때문에 가능성이 없다. 창조경제라는 단어 역시 말장난이다. 십수년동안 써오던 신성장동력이라는 말의 다른 표현일 뿐인데 역사적으로 철강, 자동차, 조선, 반도체, CDMA 등 국가지원으로 산업을 키워 경제를 키운다는 철학에 기반해 있기 때문에 앞뒤가 맞질 않는다. 그런 관료들의 문화가 바뀔 거라고 상상도 할 수 없다. 설사 박근혜씨가 아닌 다른 정치인이 정권을 잡았다고 했더라도 상황은 같았을 것이다. 문제는 정권에 있는 것이 아니라 사회 전반에 지난 수십년동안 쌓여온 비창조적인 사고방식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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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트먼 비지니스 스쿨의 로저 마틴 교수Roger Martin은 그의 여러 저술과 2011년의 저서 Fixing the Game에서 자본주의의 변화를 3단계로 나눈다. 주로 기업경영의 관점에서 바라본 이 변화의 내용은 이렇다. 첫 단계는 1932년에서 1965년에 이르는 Managerial Capitalism이고 두번째 단계는 1976년에서 현재까지 이르르는 Shareholder Capitalism인데 자본주의의 전개상 이 두번째 단계의 한계에 이르렀기에 앞으로는 새로운 형태의 자본주의가 형성될 것이라는 얘기다.
첫번째 단계는 기업의 관리자층이 기업의 소유자들로부터 독립되어서 professional하게 경영을 하는 단계인데, 20세기 초반에 형성된 창업자 및 소유자가 경영까지 책임지는 경영형태에서 벗어나 보다 과학적이고 시스템적인 경영을 하는 형태가 된 결과다. 산업혁명이 몰고온 규모와 효율성의 경제가 극치에 이르면서 경영의 모든 패러다임은 창업자 개인이나 일가족이 독점할 수 없을 정도로 복잡성이 두드러졌고 이후 경영의 여러분야에서 전문성이 요구되었기 때문에 기업의 소유와 경영이 분리된 것이다.
이후 미국을 중심으로 일어난 자본시장의 폭발이 두번째 단계인 Shareholder Capitalism을 만들었다. 기업의 투자유치는 공개적으로 이루어지기 시작했고 그 규모는 기하급수적으로 성장했다. 기업은 professional하게 운영되는 것뿐만 아니라 소유 자체까지 다변화되고 급변하기 시작했다. 전문적인 CEO라는 호칭도 이때부터 본격적으로 쓰이기 시작했는데 기존에 안정적이던 기업의 소유형태가 공개투자 및 M&A시장의 폭발로 매우 불안정해졌을 뿐 아니라, 세계화의 바람으로 인해 전문경영인들의 역량과 입지가 더욱 중요시되기 시작했다. 보다 복잡, 세련화된 경영환경에서 필연적인 변화였다. 주가관리가 되었건 배당금창출이 되었건, 전문경영인들은 shareholder들에게 가치value를 창출해주는 것이 지상최대의 과제였고 그 과제를 달성하는 한은 전문경영인들은 천문학적인 금전적 혜택을 누리는 자본주의의 시대인 것이다.
이 두번째 단계의 종말을 알리는 사건들이 2000년대에 터졌다. 바로 엔론, 리먼브라더스 등 일련의 사건으로 대변되는 전문경영인들의 (비록 개별 기업의 전문 경영인만을 뜻하지 않고 넓은 의미에서 자본시장에서 중대한 역할을 했던 투자회사, 은행, 브로커리지 산업 포함) 불법 및 비도덕적 행위들이었다. 자본시장의 globality 형성, 각종 파생상품의 복잡성, 기업의 소유에 대한 개방성 등이 전문경영인들에게 요구한 역량은 한층 높아졌고, 그 역량과 지위를 가진 이들은 이미 천문학적인 소득에 만족치 못하고 또 다른 차원의 천문학적인 수익을 추구하며 각종 불법과 부도덕을 저질렀다. 그 결과는 갈수록 주기가 짧아져가는 세계불황의 도래였다. 그래서 은행권의 도덕성을 향상시키기 위해 각종 규제 및 모니터링이 심화되고 있는데 심지어 최근에는 EU가 은행권의 보너스까지 최대치를 부과하는 법률까지 도입하려는 분위기다.
그래서 많은 경제학자들과 경영학자들이 새로운 경영의 패러다임을 활발히 논의 중이다. 그들이 논의 한다고 새로운 경영의 패러다임이 만들어지는 것은 아니지만 어떤 논의가 이루어지고 있는지는 눈여겨볼만하다. 예를 들어 장하준 교수 등은 shareholder capitalism에서 stakeholder capitalism으로의 전이를 얘기한다. 단지 법적인 기업의 소유관계가 아니라 사회적 관계자들 즉, 소비자, 정부, 시장참여자, 자본시장 등 까지 기업이 책임을 지고 경영을 해야한다는 것이다. 이런 관점은 기존의 CSR (Corporate Social Responsibility)의 관점에서 연장된 개념으로 기업의 도덕성에 촛점을 맞추고 있다. 개인적으로는 이런 관점은 기업의 자발적 참여가 제한되어있다고 본다. 이상적인 말이지만 자본주의의 생리상 기업에게 이런 기대를 하는 건 막연하기 때문이다. 이윤을 정당화하는 피동적 입장의 CSR은 의미가 있을지 몰라도 궁극적인 경영패러다임은 기존 기업질서에서는 한계가 있다.
(다른 한편으로는 로저마틴 교수가 말하는 Customer Capitalism도 있다. 사실 그의 1, 2단계론은 이 3단계로의 전이를 염두에 두고 한 말인데, 그 내용은 기업이 외부적인 게임의 룰rule 즉 주식시장에서의 실적에 전문경영인들의 KPI가 집중되어선 안되고 실질적인 게임인 고객을 행복하게 하는 것으로 초점을 되돌려야 한다는 주장이다. 그 예로, 마틴 교수는 Fixing the Game에서 미식프로축구 구단들이 어떻게 이 외부적 거짓 게임과 내부적 진실적인 게임을 동시에 잘 수행하는지를 비유를 통해 설명한다. 미식프로축구 역시 구단주나 감독의 구단 경영, 수익창출, 구단이미지마케팅, 선수영입 등 외부적인 경영목표에 많은 자원을 할애하지만 실제 게임을 고품질으로 승률을 올리는 진정한 게임을 하지 못하면 경영의 아무런 의미가 없는 셈인데, 그 두가지 게임의 룰을 이해하고 진정한 게임에 집중하는 것이 외부적인 경영실적까지 보장한다는 의미다. 그래서 미식축구구단의 고객customer인 구단팬들이 원하는 승리(률)가 모든 경영의 최우선 과제가 되어야 한다는 의미다. 이 관점 역시 내가 볼땐 개별 경영인의 리더쉽에 대한 참고는 될지언정 자본주의의 새로운 패러다임이 되기엔 역부족이다)
또 다른 시각도 있는데 대략적으로 혁신경제로 수렴되는 시각들이 그것이다. 동시에, IT업계에서 주로 활발했던 이 논의들은, 창조경제와도 그 맥락이 이어진다. 박근혜정부의 창조경제가 그 당위성이 옳은 이유가 여기 있다. 하지만 그 내용을 들여다 보면 왜 한국 지도층의 관점이 틀렸는지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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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자에 따라서 의도적으로 문제제기를 하지않았더라도 이 혁신경제의 논의는 대게 현재 자본주의 체계가 맞닥뜨린 생산성의 문제에 주로 연결되어있다. 산업혁명 이후 폭발한 인류의 생산성은 몇 차례의 호기를 지나서 이제 점차 그 생명력을 다해가고 있다. 냉전의 종식이후 70년대 중반부터 시작된 세계화가 하나의 기회였고 자본주의는 그 기회를 잘 살렸다. 이후 중국 및 브릭스시장의 개방과 자본/금융시장의 글로벌화, 자유무역의 트렌드, 2000년대 들어서 ICT산업의 폭발 등이 이후의 기회들이었다. 그 기회들은 자본주의는 잘 이용해왔다. 하지만 그 기저에 존재하는 생산성은 지난 100여년동안 산업혁명 당시의 연소기관의 발명이 만들어낸 생산성의 패러다임에 근거해 있다. 그런데 이 생산성이 정체되고 있는 것이다.
위의 도표는 딜로이트 컨설팅에서 2010년부터 조사해오고 있는 Shift Index 보고서의 일부분인데 미국에서의 자본투자생산성이 지난 40여년간 하락해오고 있음을 보여준다. (본 보고서는 이 블로그에서 종종 인용할 예정이므로 보고서의 큰 틀의 논의는 다음으로 미룬다) 미국경제 전반을 하나의 도표로 보여주는 이 분석은 단기간의 시장상황을 배제하고 장기적으로 보았을 때, 미국 기업들의 생산성이 퇴화해오고 있음을 말해준다. 그래서 해당보고서는 생산성의 새로운 이동Shift를 이해해야하며 그 이동은 많은 부분 디지털이 몰고온 새로운 지식경제로의 변화를 뜻한다. (이 생산성 하락의 이슈는 미국기업들만의 문제가 아니다. 전세계 거의 모든 선진국에서 맞닥뜨린 일관적인 세계경제의 문제고 한국 역시 자유롭지 못하다. 물론 다른 요인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하겠으나 최근의 한국 미래 생산성에 대한 비관적인 견해는 대부분 일치한다)
이런 논지는 20세기 말부터 연구가 되어온 지식경제라는 개념이 2000년대 중반 ICT산업의 폭발적 성장을 목격하며 더 확대된 결과인데, 명명을 어떻게 하건간에 이른바 제 3세대의 자본주의를 모색하는 일련의 노력인 셈이다. 그래서 창조경제 역시 생산성의 정체를 돌파할 수 있는 지식경제라는 틀 안에서 구체화되어야만 의미가 있다. ICT산업이니 융합이니 창업경제니 하는 여기저기 흘러다니는 유행어를 쓴다고, 또는 그 선택적인 산업을 국가가 나서서 육성한다고 창조경제가 무조건 되는 게 아니다. 그래서 창조경제를 말하기 전에 대한민국의 자본주의가 걸어온 역사를 뒤돌아보고 현재 위치를 살펴봐야 한다. 그래야 창조경제건 지식경제건 혁신경제건 구체화가 가능하다.
이 즈음에서 한국자본주의의 전개를 제 1단계와 2단계에 비추어서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한국전쟁 이후 빈곤을 못벗어나던 한국의 자본주의는 1단계의 길을 1970년대부터 80년대까지 왜곡된 형태로 걸어왔다. 1단계의 정의는 바로 효율성에 기반한 규모의 경영인데 한국의 경우는 수출과 재벌이라는 양상으로 그 과정이 이루어졌다. 당연히 노동과 자본이라는 경제요인이 국가에서 선정한 업종과 기업에 집중되니 속도전이 가능했고 수치적으로 매우 성공적인 결과를 달성했다. 하지만 그 정의에 비추어볼 때 한국은 1단계 동안 온전한 자본주의의 모습을 갖추지 못했다. 기업의 소유와 경영은 전혀 분리되어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21세기인 현재 시점에서도 이 물음은 여전히 적절한 질문이니 어찌보면 아직도 한국의 자본주의는 1단계의 그림자에 머물러있는 셈이다. 아뭏든 그 속도전의 내용은 바로 관리와 통제였다. 경영인보다는 국가와 재벌기업이 정한 목표를 향해 인적자원은 주어진 자리에서 톱니바퀴처럼 노동을 투하했다. 그런데 이 관리와 통제라는 개념은 1단계 자본주의의 개념에서 필수적인 요소다. 효율성에 기반한 규모의 경제에서 비숙련노동자들이 생산성을 올리는 핵심개념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숙련노동자들도 자본주의를 매우 빠른 속도로 배운 시기였는데 그들은 비록 전문경영인이 되지는 못했으나 1단계 자본주의기업이 필요로했던 관리와 통제를 뛰어나게 수행했다.
사상 유래없는 이 빠른 자본주의의 전개는 바로 교육의 힘이었다. 강한 가부장적 유교문화에 뿌리를 둔 자녀교육에 대한 무조건적인 투자가 이를 가능케 했다. 나아가서 이 교육에 대한 투자는 한국자본주의 전개 상 1단계의 완성(비록 왜곡된 형태지만) 을 넘어 2단계까지 눈부신 속도로 이동하는 핵심동력이었다. 이것이 다름 아닌 지식경제로의 전환이었는데 부족한 자원과 인구에도 불구하고 대한민국이 고성장을 할 수 있었던 이유가 여기에 있다.
위의 도표는 월드뱅크World Bank의 K4D(Knowledge for Development) 프로그램의 조사방법론에서 인용한 분석인데 한국과 멕시코의 70년대 이후 경제성장을 비교하면서 한국이 지식을 축적한 결과로 기적적인 경제성장을 이룬 역사를 설명하고 있다. 물론 한국자본주의의 제 2단계 시기까지 보여주는 그래프이지만 교육 및 지식에 대한 투자가 장기간에 걸쳐 생산성에 영향을 준다는 점을 고려해보면 이미 한국전쟁 직후부터 단 한번도 꺽이지 않은 교육열이 한국의 지식경제 (1,2단계 상의)로의 이동을 가능케 한 걸 알 수 있다. 어쨋든 1단계 시기에서 한국은 비숙련, 숙련노동의 질이 "국민교육"의 힘으로 70-80년대에 현격히 향상되었다.
그런데 바로 이 이유가 한국자본주의의 2단계가 "창조경제"로 넘어가야하는 3단계에 커다란 장애물이 될 줄은 많은 사람들이 알지 못했다. 어쩌면 아직도 너무나 많은 관료와 학자들이 모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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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단계 경제성장에서 핵심적인 개념인 통제는 한국사회가 뿌리내리고 있던 유교적 사고방식과 긴밀히 연결되어있다. 현대 사회구조를 갖춰가던 한국은 크고 작은 거의 모든 조직에서 상명하달에 근거한 강한 실행력을 최고의 가치로 삼았다. 군사정권이었다는 사실 뿐만 아니라 사회조직을 이끄는 가장 핵심적인 요소였던 리더십의 정의가 통제로 수렴되었다. 속도전을 가능테하는 효율성을 최대의 목표로 삼은 한국사회에서 이 통제는 그래서 권한의 독점이라는 형태로 고착화된다. 사회계층적으로도 계층형성에 필요한 최소한의 민주적 방식이 입시와 고시였다. 비숙련노동력을 관리할 숙련노동층을 만드는 과정이 필요했고 각종 입시와 국가고시라는 유교적 방식을 채택한 것이다.
첫번째 문제는 이 교육방법론이 3단계 자본주의에서 요구되는 창의성과는 거리가 멀다는 점이다 (창의성 문제는 후속 포스트에서 다룰 예정). 또한, 다른 측면으로 해석하자면 이 후진적 유교교육방식이 3단계 자본주의에서 요구되는 노동의 질을 담보하지 못한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왜냐하면 이 교육방식이 문화적으로 한탕주의라는 사고를 고착화시켰기 때문이다. 특정 대학과 고시, 직업자격에 합격을 하면 인생이 보장되는 후진적인 유교적 사고가 고착화 된 것이다. 이 한탕주의는 이미 2년여전 이코노미스트에서 다뤄진 적이 있는데, 3단계 자본주의에서 숙련노동자들에게 요구되는 학습능력learning agility, 적용능력cognitive ability 등과 거의 완벽히 상치되는 사고방식이기 때문이다.
고시로 대변되는 이 후진적 교육방식의 두번째 문제는 개인이라는 개념보다는 단체라는 개념이 우선시됐다는 점이다. 유교적으로 공동체 의식을 선호하는 문화에서 당연한 결과였다. 그래서 학연과 지연, 인맥이라는 패배적인 문화가 형성되었는데 이른바 1단계 경제성장에서 필수적이었던 엘리트 층을 형성하는 데에는 유효했을 지 모르지만 개인의 창의성과 창업정신을 장려해야하는 "창조경제"에서는 매우 강력한 해악이다. 3단계 자본주의에서 요구되는 숙련노동자들의 경쟁력은 이런 문화 안에서 만들어질 수 없다. 한편으로는 일본 역시 비슷한 상황인데 이 현상에 대해 이코노미스트는 부족주의Tribalism 라고까지 꼬집은 적이 있다.
결론적으로 지금 한국은, 자본주의 발달의 1단계에서 필수불가결했던 통제와 속도를 위한 인적자원의 폭발적인 성장이 새로운 자본주의 3단계에서 요구하는 개인의 창의성이라는 명제에 전면적으로 상치되는 상황이다. 이 기저의 문제를 풀지 않고서는 창조경제는 말장난에 지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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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한달이라는 시간을 잃어버린 탓에, 그리고 아직까지 프로젝트의 마무리가 완벽히 되지않은 탓에 여기까지 풀어놓은 이야기의 자세한 각론은 다음 포스트로 미룬다.


